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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이번주 묵상구절은 갈 5장 22-23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요즘 산상수훈 팔복을 강해설교하면서 목사로서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 자신을 계속해서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느끼는건 아 실수했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옥한흠목사님도 이 팔복설교를 두렵고 떨림으로 목회 후반에 가서야 용기를 내서 설교하셨다고 말씀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부족하고 이제 목회를 막 시작한 제가 이 팔복강해를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팔복은 단순히 우리가 노력해서 도달하는 도덕적 우월성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한 패키지로 받는 기본적인 축복이기에 부담이 있지만 꼭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팔복과 더불어 우리가 또 한 패키지로 받는 성령의 은혜가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다스리실 때 자연스럽게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아홉 가지 삶의 태도가 바로 성령의 열매일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 얽혀있는 하나의 패키지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이 태도들은 성령의 은사 (the gifts of the Spirit) 와는 다릅니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 기질이나 재능을 토대로 어떤 것 하나나 그 이상을 성령

죄 죽이기

이번주 묵상구절은 로마서 6장 12-13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성령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본성으로 태어납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고후 5장 17절). 우리는 더이상 끊임없는 죄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새롭게 되었어도 이 새로운 본성은 아직도 타락한 인성(humanity)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나 여전히 죽을 몸 가운데 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12절). 우리 가운데 죄에 가장 약한 부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몸, 곧 몸의 부분(지체)과 그 정욕(lust)입니다(13절). 죄의 영향력과 우리의 새로운 본성의 싸움은 우리가 몸 가운데 사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 23절에서 우리가 우리 몸의 구속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몸이 온전히 구속되는 날에 이 싸움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계속해서 전투 중이기 때문에 오늘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죄를 행하고 원하는 선을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이번주 묵상구절은 시편 24편 3-5절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공의를 얻으리니" 본문의 "여호와의 산"은 성전이 세워져 있는 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를 말합니다. 주후 70년에 성전이 무너질 때까지 모든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이 성전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때 제사장들은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느냐?"고 물었을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은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 헛된 우상에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맹세를 하지 않는 자입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매 주일 또는 주중에 하나님께 예배하러 교회에 갑니다. 그런데 교회에 갈 때 우리의 주된 관심은 어떠한지요? 우리는 음악이나 환영, 친교와 교제와 같은 외적인 것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 과연 하나님을 예배할 마음가짐이 준비되었는지 우리의 내면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늘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죄인입니다. 그렇기에 예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우리의 죄를 주님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이 먼저

이번주 묵상구절은 요한일서 4장 9-10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의 사도라도 불리우는 사도요한은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너무 분명하게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랑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독생자이신 그 아들 예수를 우리 죄를 위해 화목 제물로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화목 제물(헬. 힐라스모스)이란 죄를 심판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바쳐진 희생 제물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화목 제물은 "만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만족이 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없는 삶과 대속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만족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에게 완전히 만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또 산 위에서 변형되실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그를 기뻐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만족했던 예수님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정말 기뻐하고 그분

은혜의 역설

이번주 묵상구절은 고후 12장 9-10절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육체의 가시"때문에 힘들었고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그 질병을 낳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그 질병은 바울에게 마치 "사탄의 메신저"와 같다고 바울이 말할 정도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오늘의 본문의 말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바울의 질병을 낳게 해주시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하나님만 아시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강함으로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바울에게는 그 연약함이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이며 그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진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역설입니다. 그런데 그 역설을 바울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했고 그뿐 아니라 크게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합니다. 그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고 오히려 "약함의 강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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