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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믿음

이번주 묵상구절은 로마서 10장 9절-10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서 정말 중요한 이 구절은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당신의 입으로 예수님을 주(Lord)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참된 진리이심을 인정하는 것 이상을 의미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은 귀신들조차도 하나님이 우주의 주권자라는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이들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지만 머리로만 주님을 인정하는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주님, 당신의 주권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당신 삶의 통치자라는 깊은 개인적 확신을 사람들 앞에서 주저없이 소리 내어 고백하며 그렇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눅9:23)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자기부인" 또는 "권리포기"가 바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복음은 자기 성취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기부인에 관한 것입니다. 나의 주인

요한복음 3장 16절

이번주 묵상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17절 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항상 전도용 구절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가운데 이 성경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만 따로 떼서 봐왔기에 본문의 문맥에서 주는 전체적 의미를 놓쳐왔습니다. 이 구절의 앞부분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나오며 그 다음 요한이 이 대화를 그대로 받으며 그 내용을 부차적으로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신21:4-9) 인자도 들려야 하는데 이는 자신(예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6절은 접속사인 "For"(이때문에)로 시작하며 "so"라는 부사로 그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처럼"이라는 말은 "이렇게 많이"라는 의미보다는 "이와 같이"라는 말입니다. 불순종으로 불뱀에 물려 죽었던 또 죽어가는 이스라엘백성을 살리려고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해결책인 놋뱀을 광야에서 높이 든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높이 들리고 그분을 바라볼 때 영원한

렌섬:어린양의 피

이번주 묵상구절은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구속(redemption)은 헬라어로 "르트루"(lutroo)인데 고대에서 전쟁 포로나 노예를 돌려받거나 감옥의 죄인을 풀어주기 위해 지불하는 돈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보석금 또는 속전(ransom) 이라고 합니다. 며칠전 전세계를 강타한 렌섬웨어 해킹공격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 용어입니다. 악질의 해커들이 남의 컴퓨터에 침입해 중요한 파일들을 묶어놓고 그 파일을 열려면 돈을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혀 마귀의 종으로 살아왔던 우리를 돌려받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속전으로 드리셨습니다. 베드로는 우리 조상인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삶, 즉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세상적인(마귀적인) 방식대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식대로 살지 못하고 타락한 세상의 시스템에 얽매여 무의미한 경쟁을 하면서 생각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구해주지 않으면 이런 삶은 결국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멸망의 삶에서 구속받을 수 있는 길은 세상의 은이나 금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고 말합니다.

무죄 판결

이번주 묵상구절은 골로새서 2장 13-14절입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 본문 구절은 바울이 살던 로마시대의 법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 죽으심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결과를 설명합니다. 십자가형은 로마법의 처형 방법 중 가장 극형입니다. 한 죄인이 십자가에 달릴 때 그가 형벌을 받는 이유를 모두에게 분명히 밝히기 위해 그의 죄목을 적어 십자가에 함께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군병들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3개국어(히브리어,로마어,헬라어)로 적힌 팻말을 십자가에 함께 못 박았습니다(요19:19-20). 예수님에 대한 기소내용은 그분이 왕이며, 로마황제에 대항한 반역자이며,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죄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법적인 기소의 이미지를 갖고 우리의 죄에 대한 고소목록과 비교하며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어긴 모든 율법, 우리가 충족시키지 못한 모든 요구를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목들이 십자가에 걸렸으나 우리가 죽지 않고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깨끗하지 못한 "무할례자"였으나 예수님으로 인해 깨끗한 자가 되었고 우리의 모든 죄

대속의 역설

이번주 묵상구절은 고후5장 21절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의 헬라어 원문은 15개 단어밖에 되지 않는 구절이지만 그리스도의 대속(Atonement)의 개념을 아주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대속, 또는 구속의 개념은 복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죄를 모르시는 분, 죄없이 사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그 분께 우리의 죄를 대신 덮어 씌우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희생제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흠없는 어린양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이스라엘백성의 모든 죄를 덮어 씌우고 그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립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점없는 어린 양, 완벽한 희생 제물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은 여전히 흠이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되시기 영원 전부터 거룩하셨으며, 거룩한 삶을 사셨고 지금도 영원히 거룩하십니다. 그런데 이 거룩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가 되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이 아니셨을지라도 하나님은 마치 그리스도를 죄인인 것처럼 십자가의 저주를 대신 받도록 취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그분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인 것처럼 대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마치 죄인이신 것처럼 대하셨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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