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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6절

이번주 묵상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17절 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항상 전도용 구절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가운데 이 성경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만 따로 떼서 봐왔기에 본문의 문맥에서 주는 전체적 의미를 놓쳐왔습니다. 이 구절의 앞부분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나오며 그 다음 요한이 이 대화를 그대로 받으며 그 내용을 부차적으로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신21:4-9) 인자도 들려야 하는데 이는 자신(예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6절은 접속사인 "For"(이때문에)로 시작하며 "so"라는 부사로 그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처럼"이라는 말은 "이렇게 많이"라는 의미보다는 "이와 같이"라는 말입니다.

불순종으로 불뱀에 물려 죽었던 또 죽어가는 이스라엘백성을 살리려고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해결책인 놋뱀을 광야에서 높이 든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높이 들리고 그분을 바라볼 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사도요한의 부연설명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모든 인간(니고데모와 나 역시)이 멸망에 놓여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영생(거듭남)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멸망의 상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죄에 대한 깨달음과 그에 동반된 행위가 포함됩니다. 자신을 깊이 바라보고 절망임을 깨달은 후 이제는 놋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는 빛이신 예수를 바라보는 적극적인 행위까지 포함됩니다. 그런데 요한은 대부분의 사람들(당시의 유대인들을 포함)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오히려 그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오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라고 말합니다. 심판을 받지 않는 영생의 구원은 먼저 우리의 죄악이 복음의 빛 앞에 드러나는 것을 과정을 통과한 후에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십시요. 설명이 길었습니다. 이번 주도 멸망의 길에서 영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영생의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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